칼럼

민명기 칼럼



지난 주 목요일 저녁에 아들 녀석이 다니는 학교의 “Back to School Night”에 참석했다. 아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 날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그 날 저녁의 행사를 생각해 내고는 계획을 하는 바람에 한 10분쯤 늦어 아내와 함께 학교에 도착했다. 개회사는 놓치고, 교장 선생님의 훈시(?)가 막 시작 되려는 순간이었다. “고교 시절은 매 순간이 당신 자녀의 몸과 마음의 각 부분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기에 학교 관계자나 부모님 모두가 자녀와의 매순간을 신경 써서 보내야 할 것”이라는 요지의 말씀이었다. ‘그렇지, 아이를 혼낼 때, 생각없이 남과 비교하고, 아이의 흠을 갈갈이 발겨 내어 모욕을 준 그 순간에 아이의 마음에 상처가 나고 고름이 생겨 흔적이 평생 남아 있게 되겠구나’ 생각하니 ‘아이구 다음에는 아무리 화가나고 성에 차질 않아도 좀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심스레 대화를 나눠야 하겠구나’ 다짐한다.

전체 모임이 끝나고 아들 녀석이 속해 있는 advisory 담당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후, 아이가 수강하고 있는 과목과 교실 번호가 적힌 프린트물을 받아 들고 첫 교실로 향한다. 첫 시간은 합창반이다. 채플안에 있는 교실에는 이십여명이나 될까한 부모들이 나이 드신 흑인 선생님을 둘러 앉아 귀를 쫑긋이고 있다. 선생님이 클래스 소개를 시작하고도 좀 늦은 부모들이 계속해 교실로 들어 온다. “다음달 모일에는 합창 발표회가 있으니 꼭 참석해 아이들의 솜씨를 감상하…”하는 선생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아내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저기 우리 앞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 빌 게이츠 부부같은데…” 안 보는 것처럼 시선을 감추며 본 앞쪽에는 정말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부부가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선생님께 (정확히 말하면, 늦게 들어왔기에 선생님의 뒷꼭지를 보는 위치에서) 주목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신문이나 뉴스에서 본 모습보다는 보다 더 옆 집 아저씨와 아줌마같이 눈에 안띄는 모습을 보니 세계 제일의 명사나 아니나 자녀 교육을 위해 학교에 오면 모두가 그저 평범한 부모이구나 생각이 든다. 모임이 끝나고, 각자 다른 교실로 흩어지면서도 게이츠에게 아무도 특별한 관심을 표하지 않는 것을 보곤 좀 의아했다.

이 의아함이 더욱 깊게 다가온 것은 집에 와서였다. 아들 녀석에게 오늘 학교에서 빌 게이츠를 아주 지근 거리에서 만났다는 걸 어떻게 자랑을 해야하나하다가 넌지시 물었다: “너희 합창반에 혹시 좀 특별한 애가 있는 거 아냐?” 아이는 무슨 소린 지를 짐작도 못하고, “무슨 특별한 애라뇨, 뭐 노래를 아주 잘 하는 가수 같은 얘 말하시는 거예요?” 웬지 모르겠지만, “빌 게이츠 애가 너희 반에 있니”라고 직접적으로 묻지는 못하고, “아니, 뭐 잘 알려진 집안의 아이가 너희반에 있는게 아니가해서…”하며 말을 흐린다. 세계 제일의 부자가 뭐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닌 것으로 애비가 생각한다는 것을 구지 애둘러 표현하려는 마음속 자존심의 발로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계속 못 알아 듣고, 옆에서 보다 못해 아내가 끼어든다. “우리 오늘 너희 합창반 소개하는 자리에서 빌 게이츠를 봤어. 너희 반에 빌 게이츠 아이가 있니?” 아이는 꽤 놀라운 표정으로, “아뇨, 저는 전혀 몰랐어요. 올 해 신입생인가. 그런 소리 아직 못들었는데… 제가 체크해 볼게요”하며 웹에 들어가서는 클래스 메이트들의 사진과 이름이 나온 리스트를 점검한다. “아, 여기 있네요.라스트 네임이 게이츠인 걸 보니까 얘가 걔인 모양이네요.” 뭐 그리 큰 일도 아니 것처럼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의아함이 극에 달한 것은 바로 여기였다. 아니 같은 반에 세계 최고의 부자요 유명 인사의 딸이 있다면, 같은 반 아이들 끼리 수근대거나 선생님이 뭔가 좀 오바를 하시거나, 또는 그 딸아이가 좀 티를 내거나 할 것으로 기대를 했는데, 어느 누구도 내 기대에 부응을 해주지 않으니 좀 놀랍고 답답한 거였다. 혹시 이런게 미국을 지탱하는 힘같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 것이 바로 이때였다. 옆집 숫가락 숫자도 세는 우리네 정서와는 달리 같은반에 있는 누구가 그저 같은 반에 있는 클라스 메이트이고, 합창시간에는 누가 노래를 더 잘하느냐가 중요한 것이고, 다른 사람을 개인으로 존중해 주는 아이들이 세워가는 나라말이다. 그 깨달음도 잠시, 내 얍쌉한 입술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이에게 당부하는 것이었다: “혹시 그 애가 말을 걸거든 너무 쉽게 보이지마. 좀 거절도하구 그래라…흠, 흠, 흠.” ‘아이구 이 화상’하며 속으로 나 자신을 꾸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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