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민명기 칼럼



     지난 주말 내내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한 채 착잡한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거의 모든 채널에서 긴급으로 진행하는 뉴스는 그렇지 않아도 바깥 활동을 하지 못해 찌뿌둥한 마음을 더욱 눅진하게 만들었다. 미네소타 주의 미니아폴리스에서 일어난 한 경찰관의 과잉 대응 과정에서 발생한 중년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분노를 삭이지 못해 뛰쳐 나온 데모대의 항의 행진을 보았다. 정말 긴 역사 속에서 자행되어 온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보는 시간이었다.

 

     아마도 이 칼럼을 읽으시는 학부모님들께서는 적어도 한 번 쯤은 자녀들과, 부부 사이에, 또는 친구분들과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셨을 것이다. 어느 한 대화도 차분하게 진행되기 힘든 주제였으리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너무도 생생하게 드러난 참혹한 장면들. 땅 바닥에 내 동댕이쳐진 채로 수갑이 채워진, 투박한 무릎으로 목을 눌린 플로이드의 절규 “숨을 쉴 수 없어요”는 이 땅에 사는 많은 빈곤한 흑인들의 외침으로 들린다. “정말 숨쉴 수 없을 정도로 살기 힘들어요. 제발 숨통을 좀 틔워 주세요”라고 지르는 소리가 되어 귀속을 후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정말 힘들게 사는 우리네 서민들의 삶을 재차 억누르는 왜곡된 공권력의 과잉 행사는 아무리 양보해도 정당하게 봐 줄 수 없는 잘못이었다. 8분동안이나 목을 타고 눌러 죽음으로 이르게 한 이 행위는 20불짜리 위조 지폐를 가지고 담배를 사려한 잘못에 대한 처벌치고는 너무나 무례하고 인간답지 않은 처사였다.

 

     지난 주말 동부에서 일하는 아이들과 줌으로 화상 통화를 했다. COVID-19으로 떨어져 있는 가족들 사이의 안부에 걱정이 많아지자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얼굴이나 보고 지내자는 의미에서 시작되어 거의 두 달간 이어진 행사의 일환이었다. 당연히 이 사건에 대한 토론이 오갔다. 이 대화를 진행하며 한 가지 놀란 것은 나 자신이 나도 모르는 인종 차별 의식을 마음 저 깊은 곳에 켜켜이 모셔 놓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사건에 항의를 표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행진이 정당하다는 것까지는 모든 가족의 의견이 당연히 일치했다. 하지만, 그 데모의 과정 속에서 불순한 그룹에 의해 자행된 약탈과 방화, 파괴와 무질서로 대화가 진행되자 딸 아이와 아들 녀석이 한 편, 그리고 아내와 필자의 의견이 다른 편이 되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었다. 우리네 부모 세대들—당연히 모두는 아닌—이 한국에서부터 짊어 지고 온 흑인 인종에 대한 그리 사랑스럽지 않은 태도가 아이들의 눈과 생각에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나 보다. 1960년 이전과 비교해, 인종 차별 주의가 많이 개선되었고, 이번 사건은 빈부 격차의 문제에 가까우며, 공권력이 인종을 떠나 범죄에 반응하는 것의 문제에서 야기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는 필자의 태도에 대해 아들 녀석이 일갈한다. 각 인종별로 다양한 친구들이 많은 녀석, “많이 좋아졌다구요? 아빠를 존경했는데 실망이에요, 흑인들이 얼마나 오래 동안 차별을 받아왔는지, 이런 일들이 지난 몇 달간 얼마나 극명하게 드러났는지 아시잖아요? 그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삶 속에서 매일 매일 맞닥뜨리는 되는 일상적인 차별이에요. 조지아 주의 아마드 아버리가 조깅하다가 백인의 총에 맞아 죽은 일이 불과 몇 달 전이에요.” 아이들이나 우리 부모나 모두 인간에 대한 사랑을 중시하는 크리스찬임에도 불구하고, 대화 속에서 어디에 중점을 두는 지, 어떤 교육을 어디에서 받았는 지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토론이었다.

 

     또 다른 측면의 흥미로운 지적은 이 경찰관이 목을 누르고 있는 동안 이것을 말리기는 커녕 주위의 항의하는 주민들을 제지하고 정리하던 아시안으로 보이는 경찰관의 태도였다. 딸 아이의 지적. “혹시 이러한 백인들의 잘못을 지적하기 보다는 멀찌감치 서서 이 불법 행위에 간접적으로나마 동참하는 듯한 이러한 태도가 혹시 흑인을 차별하는 문제에 대한 우리 아시아계 한국인들의 전형적인 태도가 아닌가 걱정이 되네요. 아마도 우리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소수계가 아니고 흑인들과는 전혀 다른 특별한 모범 소수 인종이라고 착각하는 태도를 보는 듯 해요.” 물론 엄마, 아빠는 아니시겠지만요라고 외교적인 멘트로 충격을 완화시켜 주었지만, 두 녀석에게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독자 여러분의 경험은 어떠하셨는가? 아직 대화가 없으셨다면, 자녀들과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 보심은 어떠하실지. 아직 시애틀과 벨뷰 등을 포함하는 킹 카운티는 Phase 2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으니, 자녀들과 집 안에서 이러한 종류의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을 것이다. 한 가지 노파심에서 드리는 부탁: 필자는 아직 마음이 영글지 못해 자녀들이 나와는 다른 의견을 개진할 때 얼굴을 찌푸리고 언성을 높인 적도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어른이 토론에 임하는 태도가 아님을 모두가 안다. 특히,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태도임에 분명하다. 혹시 이러한 태도를 계속 보인다면, 우리 자녀들은 은연 중에 이러한 태도를 본 받게 될 터이고, 밖에서도 그러한 태도를 무심코 드러낼 터이니 차라리 아이들과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 할 정도일 것이다.

 

     이러한 ‘미국에서 아시안으로서 사는 일’에 대한 교육 뿐만 아니라, 이 팬더믹의 기간은 우리 자녀들이 팬더믹 이후를 바라 보며,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고 실천하는 기간이어야 한다. 이 칼럼에서 몇 번 언급한 것처럼, 이 기간을 허투루 지낸다면, 이것이 끝나고 학교에 돌아 가면 이 기간을 충실히 보낸 다른 아이들에 비해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특히 자녀가 중고등 학교 학생들의 경우라면, 이 기간을 더욱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네 부모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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